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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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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꽃 피었다 / 도경회 이팝나무 꽃 피었다 / 도경회 하늘이 뜻이 있어 오늘은 축복이 내리는가 애장터 돌무덤 아득히 에워싸고 이팝나무꽃 피었다 차르륵 빈 독에 쏟아 붓는 쌀 온 마을 아이들이 따순 밥을 그득하게 먹고도 남겠네
흐르는 것은 아름답다 / 도경회 흐르는 것은 아름답다 / 도경회 무명의 순교자 서둘러 산발치에서 올라온 봄 산벚 왕벚 구름송이 같은 꽃잎 한티성지 찰랑이는 햇볕 촘촘하게 얽어매 놓았다 그 먼 길 돌아 늦게늦게 찾아온 방문객의 주춤거리는 발길 덜컥 잡아채는가 산의 가슴께에서 오늘 한창이다 봉긋한 무덤 잘 썩..
언청이 / 도경회 언청이 / 도경회 윗입술 은행잎 갈래 같은 돌바기 셋이 수술을 한다 핏줄 한테 버려져 고아원 원장이 아버지라 성이 같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제아무리 잘 달래고 안아주어도 발버둥치며 우는데 이 아이는 볼우물도 깊게 방글거린다 안아주려 손만 내밀어도 줄을 타는 거미처럼 재빠르게 ..
가을 / 도경회 가을 / 도경회 그대 속눈썹이 고와 내 슬픔들이 걸어가 주렁주렁 맺히고 싶은 가을에는 헤어져 더욱 낮은 소리로 기도하는 바람이 되자 바람이 되어 떠나는 죄도 안 된다는 가을 이별 하늘과 땅 아득해지거든 꽃 지는 가을 빈 손으로 겸허하게 묵시록 읽는 바람이 되자 계간「시의나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
봄길 / 정호승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신부님이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란 시를 인용하시며 강론하셨다. 지루함인지 지겨움인지 삶의 풍경이 왜 이리도 변하지 않느냐고 열망은 끊어진 다리처럼 남루하게 비틀어졌는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한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한다. 기도와 묵상을 잃은 시간들은 메마름을 준다. 메..
시간들 / 안현미 '갤러리이레 3주년 기획전 -민병헌 사진전' 관련기사 이미지 시간들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하여 묻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초록바람 / 도경회 초록바람 / 도경회 뻐꾹채 출렁이는 몸짓 따라 부지런히 줄을 치는 호랑거미 언제 어디서나 꿈의 소출 내어주려 제 몫을 다하는 당찬 모습 보기 좋았다 깊디깊은 노을에 취하면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 같은 아찔한 절벽에서 초승달 흔들어 내 손에 쥘 때도 있었다 온 몸 저려오던 불덩이를 품어 마음속엔 비가 내리고 바람 잘 날 없는 뻐꾹채 꽃덤불, 호랑거미 그들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기를 길고 긴 실타래 풀어 핏물도는 빗소리 겹으로 감기던 뜨개질감 다시 집어들었다 도경회 시집 토요일 한참 김장에 열중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일요일 세례받은 동기들 모임이 있으니 미사 후 남으라는 내용이어서 아직 수녀님이 내 이름을 안 지우셨구나 하고 나완 상관없는 문자려니 했다. 그런데 저녁때 전화를 하셔서는 왜 이리 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