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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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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심장이 아려서 웅크리게 되는 그 느낌. 정말 마음이 아프면 신체적 가슴이 아프다는 걸 알아버린 그 시간은 잊어야 산다. 그래서인지 모든 생각과 글과 삶에서 멈춰야 하는 선을 안다. 그런데 한강이라는 작가는 그 선을 넘는다. 작가 자신은 정말 이 책에서의 경하처럼 매일 유서를 써야 하는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그의 글은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을 얘기한다. 소년이 온다 이후 제주 4.3을 얘기하는 이 글은 현기영 작가의 그것처럼 쨍하니 날 것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나깟줄처럼 엮여 퍼렇게 얼어버린 기억을 한 부분 베어 해동해 내놓은 것 같다. 왜인지도 모를 상황에 당면하여 단말마의 비명으로 죽어야 하는 참담함을 펄떡거리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전달해주고 있다. 죽고, 죽은 사람들의..
나에게만 보이는 풍경 제주 / 신미식 방학 중 유튜브 연수로 만났던 신미식 사진작가님의 신간이 연수생들 중 운 좋게 내게도 배달되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이 많은 [나에게만 보이는 풍경 제주]라는 책을 읽었다. 사진, 작가를 닮은 글을 한 장씩 넘기노라면 딸과 지냈던 3일의 기억이 향기를 내며 일어서는 기분이 든다. 김포와 김해에서 각자 비행기를 타고 내린 제주공항에서 아름다운 딸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 딸이 세운 계획을 들으며 숙소로 향하던 렌터카 안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다음날 아침 조금 부은 얼굴로 찾았던 바다가 내려다 보이던 진한 커피 향이 그만이었던 작은 찻집. 쉴 수 있는 포인트가 없는 가파름에 살짜기 놀랐는지 붉어진 얼굴로 내내 감탄했던 억새가 가득했던 오름. 어느 하나 허투루가 없는 딸이 선택한 맛있는 음식들. 색이 다른 각..
독특해도 괜찮아 / 배리 프리전트, 톰 필즈메이어 [독특해도 괜찮아] 배리 프리전트·톰 필즈메이어 지음 / 한상민 감수 / 김세영 옮김 / 예문 아카이브 2012 미 하원 정부 개혁 위원회가 자폐증 급증을 두고 연 청문회의 증인 중 한 명인 마이클은 자폐증을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취급하는 데는 '어떤 의학적인 근거'도 없다는 증언을 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자폐증이라는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요." 본문에서 로스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불안해할 때, 부모와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정확히 짚어 주었다. "여기저기 만지지도 말고 말도 많이 하지 말아 주세요. 그냥 조용히 곁에 있어 주세요. 보이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되니까요."..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 히가시다 나오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히가시다 나오키 지음 / 김난주 옮김 / 흐름출판 내가 매일 함께 하는 친구를 좀 더 이해하고 싶어서 찾아보게 되었다. 저자의 인터뷰 상황, 내용도 책에 실려 있는데 짐작하자면 내가 보는 친구와 별다르지 않고 어쩌면 더 소통이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을 수..
안젤라의 재 / 프랭크 매코트 그렇군요 앞편에 해당하는 이 글을 읽으니 그렇군요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랭크 매코트가 처한 그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안타까운데 그 와중의 성장이 어찌나 기특하고 애틋한지 모르겠다. 오늘 도서관에 가서 그렇군요를 빌려서 다시 읽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빌려온 책을 숨도 안쉬고 읽었다. 인생 3부작 같은 선생노릇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발행이 되지 않은 듯하니 기다림이 길겠다. 작가가 늦게 책을 펴냈고 이미 세상에 없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그렇군요 / 프랭크 매코트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는 힘. 마음의 크기에 감동한다. 아일랜드 이민자. 가난했던 시절. 가감없는 이야기. 본인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만들었던 독서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들이 흥미롭다. 영국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세기 중반의 아일랜드. 돈이 생기는 족족 술집에 갖다 바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대신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그런 부모 밑에서 생계를 위해 우편배달에 신문배달, 협박편지 대필까지 했던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훗날 자라서 궁핍했던 이 시절의 경험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생생하게 그려내 전세계 독자들을 울리고 웃기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바로 프랭크 매코트와 그가 예순여섯 살에 발표한 첫 작품 『안젤라의 재』의 이야기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지음 / 나영균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어린시절 처음 접한 것에 스스로도 신기하고 내 것인양 자랑스럽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인들의 시를 나만의 시집으로 만들어 쓰고 그림을 그려넣고. 제 몸을 녹이는 촛불이랄까, 진하게 파란 높은 하늘에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어쩌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자질을 마침 약간 갖고 있었고, 행운의 덕도 있었고, 또한 약간 고집스러운(좋게 말하면 일관된) 성품 덕도 있어서 삼십오 년여를 이렇게 직업적인 소설가로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