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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칠하기

 

 

 

 

 

 

 

중학교 일학년 시절 처음 수채화 물감을 들고 운동장에서 그림을 그렸던 시간. 학교 건물, 계단, 나무들을 배치하여 밑그림 그리고, 물감으로 대담하게 밑바탕을 칠해놓고 친구 그림 그리는거 구경하고, 수다떨고, 다시와서 그 위에 다시한번 색칠하고. 수채화 그리는 법을 배워서가 아닌, 그 나이 특유의 성향때문에 그렇게 색이 이쁘게 덧칠되고 수채화만의 맛이 살아나고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의식 못하고 즐겁게 놀며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의 눈에 들었다. 그 그림이 나중엔 시간에 쫒겨 계단부분이 미처 다 마르기도 전에 덧칠하였다가 그만 그림의 맛이 달라지고 말았다.

 

리 지현이의 요즈음 생활이 그러했다. 하기 싫은거 천천히 가자. 그러나 본인이 할 수 있는건 어떤 경우에도 혼자하게 하자 .기다림의 미학이 바야흐로 실천되고, 빛을 발하는 순간이 곧 오리라 믿으려던 찰나였는데 오늘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도서관에서 몰입된 시간을 보내던 내게 지현이 점심을 안 먹여도 될까요.? 저번 주까지 혼자서 너무나 잘하던 걸 아침부터 거부하고 우는 것으로 일관하는데 선생님이 여기서 넘어가야 할지, 확실한 행동을 보여줘야 할지 엄마인 내게 최종허락을 구하시는 형식이다. 점심 안 먹어도 됩니다. 살도 많은데. 해놓고 책이 눈에 들어올리 없으니, 집으로 와서, 나도 굶어야지. 

 

어제 저녁에 통닭을 먹었기에, 아침에 밥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한게 잘못이었을까. 아침에 밥을 주면 혼자서 안 먹으려 하기에, 지현인 빵을 준다. 오늘 아침도 빵을 주려다, 어제 고기만 먹었는데, 그래도 밥을 먹어야지 했던게 시간상 떠먹여주는 결과가 되었고, 그 예외를 간파한 지현이가 학교에서도 예외를 바라는 행동을 취하는 것 같아 괴롭다. 다렸어야 했는데. 안 먹더라도, 속이 부대끼더라도. 개학 후 전력을 기울였던 지현이와의 색칠하기 상호작용이 시간에 쫒겨 불투명해진 계단 색칠처럼 한순간에 너덜해진 것만 같다. 역시 큰 그림을 보고 기다렸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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