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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후

黑山 / 김훈

 

흑산

 

 

 

 

  마노리는 길 걷기가 단잠처럼 편안했다. 마노리에게 걸음걸이는 힘을 쓰는 일이 아니었다. 마노리는 숨을 쉬듯이 걸었다. 말 탄 사람이 지치고 말이 주저앉는 저녁 무렵에도 고삐를 쥐고 걷는 마노리는 힘이 남아 있었다. 길고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면 사람의 마을이 나타났고 다시 바람 센 고원을 건너가면 언덕을 등지고 사람의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어서, 그 길을 사람이 걸어서 오간다는 것이 마노리는 신기하고 또 편안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갈 뿐 아니라, 저 마을에서 이 마을로도 가면서, 길 위에서 서로 마주치기도 하고 마주친 사람들이 어긋나게 제 길을 가고 나면 길은 비어 있어서 누구나 또 지나갈 수 있었다. 길에는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있었고 주인은 없었다.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근본이라는 것을 마노리는 길에서 알았다.(본문 41쪽)

 

책 초반부에 만난 위 글을 읽는 순간 마치 눈앞에 마노리의 길이 초록빛과 어우러져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표현이 좋았다.

황사영과 마노리만으로 표현되었으면 좀 더 명확할 수 있었을까.

흑산의 정약전 삶이 더해지면 어쩐지 더 흐릿해지고 길을 잃는 기분이었다.

 

정약현이 사위 황사영에게 노비 육손이를 서울로 함께 보내면서 건넨 한마디

― 육손이는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일세. 그걸 잊지 말게.

라는 단순한 말처럼 천주학은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있던 것들을 말로서 확인받았던 믿음이었을 것이다.

상하 귀천없이 사람으로서 사람의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한다.

 

오늘,

폭풍이 분다.

나무와 풀, 작은 꽃들까지도 살아있음에 흔들리어 비바람을 이겨낸다.

이 순간 창 밖의 풍경에 경외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