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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뜰

바람 부는 날

 

 

photograph by nicedragon

 

 

 

 

 

 

바람 부는 날의 풀  

 

 

- 류시화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 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학교에서 돌아오는 지현이를 데리고 진주성에 갔다.

가기로 했던 것이니 갔다고 해야 옳겠다.

바람 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햇살이 저만큼 좋은데.

걷다보니 아무것도 아닌것이 아니어서 목도리에 모자를 눌러써도 양볼이 시렸다.

작정한 일도 일기를 봐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할 일이다.

풀들이 서로를 일으켜 주듯 지현이와 손을 꼬옥 잡고 바람 부는 날 아찔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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