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초등학교 6학년 늦여름 삼패리 강가에 놀러갔다가
모래채취로 수심이 갑작스레 깊어진 곳에 빠져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그 때 하염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느낌 중에도 눈을 뜨고 앞을 봤었다.
뿌연 흙빛의 물 속.
어둡지 않고 환했다.
아. 이렇게 해서 죽는가보다.
신기하게도 맘이 어찌나 편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 아무 기억도 떠올리지 않았었다.
더 원하는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기에 그토록 편안했었던 것 같다.
힘들다.
편하고 싶어서 생각을 생략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 순간 너무도 단순화된 생각과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
공배를 메우는 것처럼 글쓰기를 한다.
빽빽하게 채워져 더 둘 곳이 없어지면 편안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