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읽은 후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라는  첫 줄로 시작하지만

첫 줄만으로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아흔 살이 되는 날이라는 한마디로 나는 아흔 살이었던 아버지를 기억해냈다.

아버지는 12살 어린 그때 나이 열여섯 어린 새색시에게 부모형제가 없는 혈혈단신의 몸을 의지하고 60년을 살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란히 누워 잠들었으며 누구라도 한 사람 새벽 한 두시에 깨어나면 옆사람도 깨어나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양반, 어디 댁으로 일컬어지는 젊은시절 자신들의 친구 이야기에 새벽시간의 한 부분을 꼭 잡아두곤 하셨었다.

당신보다 어렸던 색시를 먼저 보내고 자식들의 집을 유랑하듯 돌아다녀도 봤지만 다시 찾을 수 없는 빈자리에 아득해 하셨다.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가늠하기도 힘든 먼 시간과 공간에 미리 지친데다 자식들 뒤치다꺼리로 매일이 분주하여 언제 마지막이 닥쳐올지 모를 불안에 시달리는 고독과 어디에서도 이전의 자신을 찾을 수 없어 절망하고 불행해하시는 아버지를 한사람의 객관적 인물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했었다.

  

아흔 살의 남자. 

책 속의 나 또한 아버지처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을 원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린 창녀의 모습은 잠든 소녀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십 살의 나, 오십 살의 나, 구십 살의 내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멋지게 차려입고도 쇼윈도에 비친 모습에서 절망을 느끼게 될지 모르지만

"그러니까 나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받았던 것이다."

라고 마지막 줄에 쓰인 것처럼 건강한 심장으로 열심히 살다가 사랑을 느끼며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