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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1991년 5월 학생운동의 복판에 서있는 주인공 '나'를 보면서

그 해 그 달이 내겐 꿈같은 결혼식이 있었던 달이라는데 생각이 닿으면서

삶이라는 게 같은 시간 속에 살면서도 이렇게 다른 모습일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 첫 번째 든 생각이었다.

 

삶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관통되어 온다.

책 본문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1980년대 한국의 대학생들이 1980년 5월 광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살아남은 것이라는 허무와 우연의 세계에서 벗어나 백주대낮에 시민을 살해하는 폭압적인 체제에 맞설 수 있는 존재, 서로 연대하였으므로 쉽게 죽지 않는 존재로 바뀌어나간 것처럼......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궤도를 이탈한 위성처럼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폭력에 몸과 정신이 훼손되는 속에서도 정신적으로 재탄생하고, 진실을 말하려고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늘의 별들처럼 그 자리에 있음이, 오늘 이 시간의 만남이 이미 예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같다.

 

80년대에 20대를 보낸 내겐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그날도 퇴근한 후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 매표소 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만치서 쫒고 쫓기는 사람들이 내달려오고 있었다.

시위대와 동떨어진 학생과 뒤따르던 백골단 청년이 매표소 앞에서 하나로 뒹굴었다.

그때 퇴근길의 시민들이 둥그렇게 에워싸고 학생을 놔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 손으론 학생의 멱살을 잡고 한 손에는 곤봉을 쥐었던 백골단 청년이 그때 절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내 편 한 명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러면 이 학생을 놔주겠다고.

그때의 정적.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잡히고 잡은 청년 모두 같은 희생자라고.

 

이 책 들어가기 전에 한편의 시가 적혀있다.

이 시 한편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 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