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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뜰

시간들 / 안현미

 

 

 

 

'갤러리이레 3주년 기획전 -민병헌 사진전' 관련기사 이미지

 

 

 

 

 

 

   시간들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하여 묻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죽은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안현미 시집 <이별의 재구성>, 창비시선 306

 

 

 

 

 


 

 

 

 

 

하루종일 엄마가 보고싶었다.

스무살이 넘었을 때 그가 나에게 물어왔다.

어떤 사람이 되고싶냐고.

나는.

나중에 엄마처럼 되고싶다고 했었다.

 

연약하고, 모자라고, 실수가 많았던 사람이지만

더 좋은 사람, 더 든든한 부모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배우고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여름날 바람 한 점 없는 들판에 서있는 것처럼 지쳐갈 때

품안의 새끼들한테 눈 맞추고, 그 사랑에 위로받으며 살았다.

 

약한 자식 약하게 키우지 말라는 충고

그게 뭐라고

무릎 까져서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서러움 가득 묻어서는

하루종일 엄마를 마음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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