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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뜰

초록바람 / 도경회

 

 

 

초록바람 / 도경회

 

 

 

 

뻐꾹채 출렁이는 몸짓 따라

부지런히 줄을 치는 호랑거미

언제 어디서나 꿈의 소출 내어주려

제 몫을 다하는 당찬 모습 보기 좋았다

깊디깊은 노을에 취하면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 같은 아찔한 절벽에서

초승달 흔들어 내 손에 쥘 때도 있었다

온 몸 저려오던 불덩이를 품어

마음속엔 비가 내리고

바람 잘 날 없는 뻐꾹채 꽃덤불, 호랑거미

그들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기를

길고 긴 실타래 풀어 핏물도는 빗소리 겹으로

감기던 뜨개질감 다시 집어들었다

 

 

도경회 시집 <외나무다리 저편>

 

 

 

 

 

 

 

 

 

토요일 한참 김장에 열중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일요일 세례받은 동기들 모임이 있으니 미사 후 남으라는 내용이어서

아직 수녀님이 내 이름을 안 지우셨구나 하고

나완 상관없는 문자려니 했다.

그런데 저녁때 전화를 하셔서는 왜 이리 늦게 전화를 받느냐고

예의 그 강한 목소리에 더 힘을 주신다.

아.. 수녀님.. 제가요 김장 중이라서요.. 그리구.. 저는 해당 없는 단체 문자인줄 알았는데요.

저에게만 보내신 문자인 줄 알았으면 제가 전화 드렸을 텐데요. 죄송합니다.

하곤 마주보고 있기라도 하듯 둘이 환하게 웃었다.

성당엔 잘 다닙니까?

레지오 합니까?

아니요. 저녁시간에 맞춤한 모임이 없던데요.

그럼 만들어서라도 해야지. 우리 마리안나같은 사람을 잘 키워서 쓰질 않고서는.

하하. 수녀님이야 공부하면서 정들었으니 그만큼 믿어주시는 것이지

실상 제가 그런 그릇으로는 모자랍니다.

주일 미사도 종종 빠지는 걸요.

그 말씀 그대로 드렸다가는 크게 혼날 것 같아서 슬쩍 꼬리 부분은 얼버무리고 말았다.

수녀님도 다른 곳으로 가실지 모른다고 올해 안으로 한번 들르라는 말씀에 순순히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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