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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뜰

큰 딸 2010.1.27

친하게 지내는 자폐성 장애 아이의 엄마가 그랬다. 씩씩해 보이기만 하던 그 엄마도 어느 날은 너무나 답답해서 아이들이 보지 않고 누가 듣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서 들어간 곳이 화장실이었다고. 화장실에서 물 틀어놓고 한참을 울다 나왔는데 다음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래층 여자가 너무 속상해하시지 말라고 말을 건네는데 그 순간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했다.

 

일요일. 작년 여름방학에 끝냈던 중국어를 선생님께서 굳이 보충수업을 해주시겠다고 오셨다. 수업은 그만두시고 차 마시자며 이끌어도 고집스럽게 수업을 마치시고, 거실에 마주 앉아 거의 3년 가까이 보고 지낸 정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이 쌍둥이라는 것과, 쌍둥이 동생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로 인한 사춘기, 아니 한국으로 시집오기 전까지 고통스러웠던 얘기들을 하면서 민경이가 따뜻하고 밝게 잘 웃는 아이로 자란 것에 대한 치하를 했다. 동생을 언니에게 부담 지우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얘기하던 중에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신다. 당신의 친정엄마도 같은 생각으로 자신을 한국으로 시집보내셨다면서.

 

부모는 울 수도 있다. 화장실에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도. 성인이 되었고, 자신이 낳았음에도 처음엔 누구나 자기부정, 현실도피를 꿈꾸는 부모들에 반해 몇 살 차이도 없이, 아직도 어린아이인 상태에서 형제들은 무방비상태로 도전받아야 한다. 그래서 민경이를 보면 더 애잔하고, 일찍 철이 들어버린 모습에 마음이 아파진다.

 

지난주 새벽 운동에 따라나섰던 민경이가 이번 주는 너무 피곤해하길래 오늘 아침엔 아예 깨우는 시늉도 없이 다녀왔더니 내일은 꼭 깨워달라고 한다. 저녁에 운동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기엔 가방이 너무 무겁다고. 몇 년 전 사촌동생들이 집에 왔을 때, 통닭 두 마리 시켜주고 어른들끼리 외출하고 돌아오니 빛의 속도로 먹는 사촌들을 보다가 위기의식을 느껴 일단 다른 접시에 지현이 몫의 통닭을 담아주고서야 자기도 먹기 시작했다는 민경이를 물끄러미 아침에 쳐다봤다. 저 녀석 마음엔 어떤 회오리가 휩쓸고 갔을까 생각하니 심장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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