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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뜰

부모의 마음

아이를 낳고 부모로 산다는 것은 인생의 또 다른 문을 여는 과정이다.

특히 장애 아이를 낳는 순간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따라오는 주변의 무지한 언어들의 타격감에 휘청거리고

부모이기 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송두리째 의심받게 되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이토록이나 힘이 없을 수도 있나 아연해지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이 두 아이를 끌어안고 살아나가야만 하는 어미로서의 힘이 발현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특성인 사회성이 좋다는 그 단어가 우리 지현이에게는 전혀 성립이 되지 않아

밖에 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야만 하는 사람의 그것처럼

치열하고 완강한 거부로 시작되는 것이어서 항상 아이의 감정에 이입된 엄마를 슬프게 했는데

그 와중 스스로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정규 학교 교육을 피하지 않았었고

아이는 그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작년 이맘때였을까. 지현이 초등학교 때 같은 특수학급에 있었던 아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을 먹고 강변에 운동을 나왔는데 우리 집 앞이라며 혹시 볼 수 있겠느냐고.

마침 우리도 운동을 나와 주변에 있었던 터라 반갑게 얼굴을 봤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종종 집 근처 낮은 산에서 주말에 마주칠 정도로 그 엄마나 나나 운동에 열심을 냈었는데

우리 지현이는 스무 살부터 시작된 우울증으로 먹는 약 때문에

그 친구는 조증으로 먹는 약 때문에 살이 많이 쪄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을 지나 서로의 일상을 얘기하는 중에 그 엄마가 눈물 바람을 한다.

"이리 별로 뽀대 나게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그리..."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우리만의 다독임으로 먹먹해지는 가슴이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다리에 염증이 생기면서 지현이는 더 걷는 게 어렵게 되었고

무당 찾아다니는 심정으로 양한방 가리지 않고 순례하다가 지금은 한가닥 길로 치료에 전념하면서 드는 생각은

삶이 너무나 어렵다 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했었으면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까.

유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번 오답노트를 작성하듯 되돌려 생각하고 생각하는 게 습이 되었는데

오늘도 똑같이 변화되지 않은 패턴으로 산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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