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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뜰

네거리에서 / 김사인

 

 

 

 

 

 

 

네거리에서

 

 

 

 

그럴까

그래 그럴지도 몰라

손 뻗쳐도 뻗쳐도

와닿는 것은 허전한 바람, 한 줌 바람

그래도 팔 벌리고 애 끓어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살 닳는 안타까움인지도 몰라

 

몰라 아무것도 아닌지도

돌아가 어둠 속

혼자 더듬어 마시는 찬물 한 모금인지도 몰라

깨지 못하는, 그러나 깰 수밖에 없는 한 자리 허망한 꿈인지도 몰라

무심히 떨어지는 갈잎 하나인지도 몰라

 

그러나 또 무엇일까

고개 돌려도 솟구쳐오르는 울음 같은 이것

끝내 몸부림으로 나를 달려가게 하는 이것

약속도 무엇도 아닌 허망한 기약에 기대어

칼바람 속에 나를 서게 하는 이것

무엇일까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탯줄로 이어진 인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 아픔의 무게가 있겠지.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자식이 느끼는 아픔의 무게를 함께 감당할 자격이 주어졌을 거야.

믿고 싶어.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균형을 잡고

가장 합당한 처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리라는 걸 꼭 다짐 받고 싶어.

 

장애를 가졌어도 온전한 한 사람의 인간이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함부로 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

믿었지. 내 아이를 맡아서 운동을 시켜주고, 돌봐주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 그건 내 마음과 같으리라는 믿음이었어.

 

어제와 같은 장면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너무 아파.

그래도 웃는 내 아이를 보면서 살이 닳는 것 같았지.

 

믿는 과정이 회피의 과정은 아니었나.

만 가지 생각.

아이가 원하는 운동을 안 보낼 수도 없고.

앞으로 계속 도와주는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을 수도 없는데.

믿을 수 없다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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