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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뜰

끄적끄적

 

지현이가 개학을 했다.

여름방학은 몸이 아파서 힘들었고

겨울방학은 마음이 아파서 힘들었다.

 

개학은 거짓말처럼 일순 모든 상황을 정리시켰다.

설 연휴까지도 개학날 맞춰 일어날 수 있을까, 학교와 방과후 활동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 넣어본다고 용을 썼는데

보란 듯이 지현이는 엄마와 함께 한 전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아침에 단번에 일어나 밥 먹고 학교에 가면서 싱글싱글 웃었다.

 

방학식 날 시작된 모든 일들이 무엇이었지?

당황스러우면서도 그 커다란 울음이 치유될 만큼 시간이 지나고도 남았던 걸까?

원인제공의 환경에 다시 보내지는 걸 그토록 두려워했었는데...

헛웃음이 날 지경으로 상황정리가 안되었다.

 

열린학교에 보내면서 지현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았던지라

요 근래 방학 땐 무조건 집에서 엄마랑 쉬었는데 이젠 집에 있는 게 답답한가 보다.

운동도 예전엔 나가자고 하면서부터가 전쟁이었는데 지금은 도리어 안나가면 우는 것만 봐도

지현이가 자랐고,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엄마가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월요일부터 어제까지 지켜봤는데

역시 집에서 한 두 시간 운동하고 불규칙하게 외출하는 것으론 답답했던 게 맞는 것 같다.

엄마는 맨날 애기인 줄 알았는데 지현이는 나이대로 자라주고 있었다.

 

비로소 혹시나 했던 마음이 풀어지며 여유가 생긴다.

졸업식 관련하여 작년 문서들을 찾다가 컴퓨터 문서함을 정리했다.

몇 달 지난 글 같은데.. 그 때 신부님 강론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들을 어찌 정리하고 싶어서 끄적끄적 했던 글 같다.

지나간 글은 새롭다.

 

 

본당의 날 행사에 맞춰 우리 성당 초대 신부님께서 35년 만에 방문하셔서 강론하신 말씀에

30여 년 전 세대들이 우리 가족, 공동체, 사회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을 사셨다면

지금의 세대들은 내가 행복해야 가족, 공동체, 사회가 더 행복해지는 삶을 살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전제하시고

하느님의 말씀 또한 말로 전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말씀을 통해 변화된 교우들에게서 발산되는 향기, 빛에 의해 주변이 변화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셨다.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며,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삶이 될 것인가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되겠지만

삶 속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처, 고난, 책임, 희생 등을 회피하는 것이 진정한 삶은 아닌 것 같았다.

진정한 행복은 최선을 다하여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아픔과 후회를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때 깨달음처럼 주어지는 감사함이 아닐까 평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존재로서의 나를 소중히 여기며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 모두가 공동체라는 의식. 이기고 군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그대로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세상과 마주하면서

한시적이고 찰나적인 감정이 아닌 평화를 마음에 품고 주변을 아름답게 바라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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