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뜰

빌리 엘리어트

 

 

 

 

네가 웃고, 울고, 화내는 모습을 옆에서 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는 항상 너와 함께 있을거야.

그리고 끝까지 너답게 살라고 한 마지막 말까지.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18세가 되면 보라고 했던 편지를 벌써 읽어봤다며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오라던 선생님 앞에 내놓던 편지.

선생님이 읽으실 때 이미 외어버린 내용을 읊조리는 빌리를 보면서

엄마로서 내 자식들에게 저렇게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편지가 정확한 대사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또한 무뚝뚝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아빠를 보면서 끝까지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엄마의 편지를 읽고난 후여서 그랬을 것이다.

엄마가 사랑했던 남자로서의 아빠의 모습이 언젠간 보여질 거라는 믿음이었다.

 

영국 대처 수상시절 정부와 광산노동자의 대치로 불안정함이 잦은 비처럼 젖어있는 마을에서

힘으로 먹고사는 남자들의 세계에 맞는 권투가 아닌 발레가 좋아서 춤을 추는 11살 아들을 향해

무조건 반대하다가 빌리가 춤추는 것을 보고 어쩌면 천부적 재능을 가진 아들을 뒷바라지 못한 아비가 될까봐

괴로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진하게 다가온다.

 

감정 발산의 통로역할을 해주셨던 발레 선생님과의 사각링이 있는 체육관에서의 수업장면이라던가

같은 광산 노동자로 의리를 지키는 아버지와 형의 고뇌, 경찰과 대치하다가 형이 붙들리는 장면을 본다거나 

춤을 출 수 없을 때의 답답함 등을 표현한 몸짓들이 빌리가 겪는 가슴의 격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걸 보면서

춤이란 기교가 아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로열발레학교에 오디션 보러갔을 때

그냥 춤이 좋았어요.

춤을 추고 있으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몸에 불이 붙어있는 것 같고, 새가 되어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마치 전기에 감전된 느낌이라는 대답을 했던 빌리.

자신이 원하는 것,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낀 대답이었던 것 같다.

 

발레학교에서 온 통지서를 식탁에 놓고 기다리는 할머니, 아버지, 형.

그 긴장감. 간절함. 모든 것을 포용하고 다독일 준비가 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갖는 표정.

합격통지서를 받고 집을 떠날 때 할머니와의 작별에서 보여준 벼락같은 진한 포옹 뒤로 숨기던 스타카토같은 슬픈 감정. 

버스 떠나기 전 아버지와의 포옹, 버스에 올라타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다가 네가 보고싶을거란 형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뒷좌석까지 달려나가 손을 흔드는 장면에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가족의 이별은 절절하고 먹먹하다.

 

시간이 흘러 빌리의 발레공연에 참석한 아버지의 표정. 

백조가 되어 활짝 뛰어오른 빌리의 모습에 내 눈도 붉어지고 있었다.

 

 

 

'안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끄적끄적  (0) 2014.02.06
아버지  (0) 2012.10.05
민경이의 축하  (0) 2010.09.10
새학기  (0) 2010.03.02
........  (0)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