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뜰

흔들리며 피는 꽃


아이를 안고 택시를 탔다. 5살이 되는 아이를 장애전담 어린이집에 등록하기 위해 상담받으러 가는 길이었고

내 불안이 아이에 대한 말들로 이어졌던가. 택시 기사님은 일반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보내면 안 된다고

우리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거라며 어찌나 매섭게 얘기를 하던지.

상처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리둥절했던 그날의 기억은 타인의 시선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이후로도 말할 수 없이 무심한 듯, 알고도 모른 듯, 모르고도 아는 듯 상처를 베어 물며 무릎이 꺾이고 세상 앞에 비루한 몸뚱이가 된 것 같은 경험 속에서도 자세를 세우며 살아내다 보니 힘이 생겼나 보다.

내가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 모르면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이해하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던 일.

둘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고 나는 병든 친정 엄마의 품으로 도망을 쳤다.

아픈 엄마는 아이의 장애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당당하게 받아들이셨고,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 모르는 나의 엄살을 본 척도 안 하셨다. 큰 아이랑 똑같이 키우라는 무언의 길잡이 역할을 하셨는데 그 마음이 내게도 당당히 얹혀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처럼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

 

아이와 내가 만나 살아온 시간이 스물여덟 해가 되었다. 그간 나는 아이와 함께 흔들리며 성장해왔다.

아이를 더 잘 이해해보고자 마흔이 다 되어 유아교육학 공부를 했고, 아이를 통해 학교와 치료실 등에서 만든 다양한 경험으로 장애학생들의 통합수업을 지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환경은 아이에게도 학교에서의 아이들에게도 서로 상승효과를 내면서 나를 성숙하게 했다.

 

생각은 쉽지만 마음과 행동으로까지 전달되기 어려운 것이 편견을 바로잡는 일이다.

세상과 사포처럼 맞닿을 시기 가장 먼저 내 맘에 평화를 심어준 씨앗으로 모든 장애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똑같이 받아들이고 평등하게 바라보게 된 시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자식의 장애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내 자식의 장애만 품어서는 타인의 편견에 대항할 수 없음을 무의식 중에도 알아챘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유년기부터 청년기인 지금까지도 흔들림을 요구한다.

나는 그때마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서며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안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약 다이어트  (0) 2022.03.23
걷기  (0) 2021.07.19
지현이에게 2010.11.4  (0) 2021.07.01
큰 딸 2010.1.27  (0) 2021.07.01
장애아이는 왜 내 자식이면 안 되는가? 2014.1.22  (0) 202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