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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뜰

걷기

작년부터 우리의 화두는 지현이의 걷기이다.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걷기가 생활이었는데 작년 초부터 코로나로 집 밖에 몇 달을 나가지 못하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재작년 폐렴에 걸렸을 때 입원 거부로 끝내 링거를 달고 집으로 향했던 그 두려움이 코로나를 대하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지게 만들었다. 센터가 쉬지 않을 때도 보내지 않았던 날에 공식적인 센터 휴원기간까지 더해 많은 시간 집에만 있다가 움직임이 가능해진 4월 정도부터 집 앞 강변을 걷는 운동을 시작했는데 걷는 모습도 달라졌고, 걸을 수 있는 거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작년 초 내 근무지 이동과 여러 사정으로 지현이 센터도 집 근처로 바꾸었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지현이가 마음을 열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은 결과적으로 급격한 운동량 감소의 원인이 되었다. 활동 선생님의 시간과 별개로 집에서도 그 운동량을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녁시간 지현이가 점점 더 걷기 힘들어하는 모습에도 더 열심히 걸어서 예전의 근육을 회복시키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처음 걷는 모습이 변화되었음을 인지하고 괜찮아지지 않는 모습에 정형외과에 갔을 때 선생님은 그냥 쉬어주라며 정확한 의사표현을 못해서 찾아낼 수 없기도 하려니와 혹 염증이 있다고 한들 약을 먹인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며 그냥 두라고 하셨는데, 공감 없이 핵심만 전달하는 진단에 마냥 따를 수는 없어서 다른 병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재활의학과에서는 관절이나 다른 곳에서 이상 징후를 찾기 어렵다며 일단 걷기보다 실내 자전거로 운동을 해보는 것을 권유했다. 그럼에도 더 악화되는 다리에 혹 기력이 없어 걷는 게 힘든가 싶어 한의원에 가서 상담하니 물리치료로는 낫지 않고 침을 맞아야 하는데 너무 아파 못 맞을 테니 맘의 준비가 되면 오시든가 하라고 하여, 다른 한의원에 가서 보이니 좌우 균형이 안 맞아서 힘든 것 같다고 추나요법을 시도하셨는데, 그날 이후론 손도 대지 못하게 거부해서 보약만 몇 재 더 먹었으나 다리는 좋아지지 않았다. 이후 도수치료를 잘하신다고 소문난 물리치료사를 찾아가서도 추나로 한번 겁을 먹은 지현이는 시간만 보내고 치료를 완강히 거부하여 좌우 균형 맞추는 법과 물리치료사 선생님의 안타까움만 한가득 안고 되돌아 섰다.

 

고민 끝에 더 악화된 다리로 재활의학과를 다시 찾으니 이젠 엑스레이조차 찍으려고 하지 않아 여러 방법으로 움직여보게 한 후 다른 문제가 없으니 염증약을 먹어보자고 하시며 약을 먹어보기 전 대학병원에 가서 종합검사로 다른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자고 하셨고, 이상이 없어 재활의학과에서 염증약을 받아서 두 달째 먹고 있다. 그리고 손을 잡고 걷기보단 워커를 사용해서 실내에서도 걷길 권하셔서 방법대로 사용하니 디딜 때 통증을 크게 느끼지 않고 생활하게 되었고, 오래 걸을 때는 휠체어를 대여해서 사용하고 있다.

 

너무 무리해서 걷지는 말아야 하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은 멈추지 않아야 하는 매우 어려운 숙제를 받았는데, 지현이는 우리가 느끼는 심각성의 반의 반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목욕탕이라도 매일 가서 냉탕에서 걷게 하고 집 바로 옆에 스포츠센터가 있으니 수영장에 활동 선생님과 갈 수 있을 텐데 그마저도 해볼 수가 없다.

 

특수 선생님들과 그 옆의 아는 분들 경험을 모두 더해봐도 정확한 진단이 없으니 서로들 답답한데, 한 특수 선생님이 쉽지 않겠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길게 바라보고 매일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독이셨다. 그 마음을 새기고도 걸을 때 힘들어하는 자식을 보는 마음은 매번 조급해지고, 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당부를 비롯 모든 의견의 마침표는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것에 모아지는데, 지현이는 세상 걱정없고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지는 못해도 아주 안 먹지는 않으며 풍채를 유지하고 있고, 엄마 체중만 줄이는 중이다.

 

먹는 것만으로 저만한 체중이 되었다는 걸 납득할 수 없어 매일 어플로 먹는 것을 적고 인바디 기능이 있는 체중계도 사서 기록을 저장하는데 말 그대로 기록일 뿐이다. 점심과 6시 이전에 먹는 저녁 이후 물, 가끔씩 우유 1잔 외에는 먹지 않는 식습관 속에서 어떻게 이 체중이 유지되는지 장탄식이 나온다. 우울증이 심각해서 안정을 찾기까지의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폭식으로 급격히 체중과다가 되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전으로 되돌릴 접점이 없는 평행 철로에 들어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면 하루에 몇 번씩 체중계에 올리다가도 헛웃음이 난다.

 

어제저녁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림 그리는 두어 시간 동안 지현이가 너무도 평화롭고 행복해 보여 그 느낌에 기대어 지현이 삶이 학교와 센터를 다니면서 규칙에 얽매인 시간을 보내다가 성인인 제 모습에 맞게 이제야 자기 자유 의지로 하루를 살고 있구나 하는 순간의 벼락같은 느낌. 나는 또 내 자리에서 내 눈과 마음으로 판단하고 욕망하고 있었구나.

 

살이 찌고, 몸의 호르몬 변화가 생겨 약을 더해서 먹고, 다리에 무리가 생겨 잘 걷지 못하게 되고, 센터에서는 다른 곳으로 가길 종용하고 그 모든 변화들에 부모는 종종거리고 분노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지현이는 센터에 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그지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서인지 부종이 생기던 다리도 붓지 않고 먹는 것에도 전보다 집착하지 않으며 매일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때때로 답답하면 활동 선생님과 집을 벗어나 드라이브 삼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들어오는 생활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 같다. 지현이를 바라보면 참으로 무엇이 옳은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 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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