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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뜰

세바시 강연을 보고

 

난 외롭다. 두렵다.

나 같은 이는 장애로 왜 태어났을까?

괜히 낳아보네. 괜히 나왔다.

난 외톨이야. 놀 친구가 없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난 내가 궁금하다.

내가 왜 또래 아이들과 놀림감이 됐을까?

난 고민이다.

내 인생이 너무나 힘들다.

그래도 쉬고 싶다. 자고 싶다. 울고 싶다.

울 때는 울어야 한다. 기쁠 때는 기뻐야 한다.

나도 참 모른다.

그만 해야지.

 

- 세바시 강연중 정은혜씨의 자작시.

 

 

 

카톡이 울리고 오랜만에 연결된 지인들은 지현이를 얘기한다.

우리들의 블루스 이후 은혜씨가 방송에 나온 날인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 지현이도 그림 잘 그리는데.. 전시회라도..."

말줄임 그 뒤의 열망을 느끼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정리를 한다.

은혜씨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연기도 하고, 표현을 하지만

우리 지현씨는 유창하지 못한 말과 표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인들에게서 얻은 정보로 오늘 세바시 영상을 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은혜씨의 자작시를 듣게 되었다.

우리 지현이가 성인이 되는 길목에서 왜 그토록 울어야 했는지 친구가 대신 설명해주는 것 같아 먹먹한 눈물이 났다.

치열한 이 세상에서 평화롭게 보이나 실제로는 겉돌고 있는 이 삶이 자신이 원하는 삶은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묵직한 절규였다.

 

지현이는 자신을 다른 존재로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었기에 세상에 처음 나선 유치원 생활에서 또래에게서 받은 배타적 시선과 놀림에 두려움과 분노를 느낀 듯했다.

주변에 완강한 울타리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며 세상에 나선 지현이. 

유아기 이후 집이 아닌 곳에서 또래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고 안으로 숨어드는 모습에

그 틀을 깨는 것이 큰 과제가 될 것임을 우리는 예감하고 있었다.

 

조금씩 변화가 있었기는 해도 성년기에 접어드는 시기의 우울과 큰 울음을 거친 몇 년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 그 틀을 깨뜨리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학교 졸업 후 다니던 장애인 센터를 종료하면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지현이의 당당한 자아를 되찾는 느낌이다.

한약 다이어트 이후 꾸준히 체중은 내려가는 중이고, 피부는 맑아지고 눈빛은 똘망해지니 시간이 더 지나면 걷기도 수월해지지 않을까 진심 바라고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 은혜씨 나오는 편을 보면서 큰 아이에게 카톡을 했었다.

"은혜씨는 살이 쪘는데도 잘 걷는데 우리 지현이는 왜 잘 못 걸을까? "했더니

"드라마 보고 그 생각이 젤 먼저야?"  어이없어하는 딸에게

"왜 다른 생각도 했지. 언니 얘기만 나오면 도망가는 남자 친구 놈들도 생각했고..."

그 드라마로 인해 다운증후군 지현이와 함께 사는 우리 가족들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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