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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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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한강 [소년이 온다] 한강 / 창비 한강의 소년이 온다. 그 광주의 일들은. 화면으로 본 작가의 생기없음이 마치 그 시간을 다 토해내고 함께 구멍난 가슴팍으로 피를 철철 흘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너무도 차분하게, 침착하게 그 날, 그 시간을 촘촘하게 묘사해서..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내 눈이 백색이 되는 듯한 두려움이 들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조차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상상할 수 있음에 갖게 되는 두려움이다. 그 와중에도 힘의 작용과 폭력이 존재한다. 빨리 죽는 것이 축복이겠다 생각했다. 희망은 없다. 그러나 견뎌내는 자가 다시 눈을 뜨는 기회도 얻는다.
바느질하는 여자 / 김숨 무언가 가슴에 턱하고 박혀오는 것이 있을 때 잠시 몸의 기운을 모조리 비워내고 그 감정에 온전히 젖어있고 싶을 때가 있다. 책장을 덮으면서 그랬다. 옷을 지어 쌀을 사고, 자식들 공부시키는 어머니의 삶. 풀잎처럼 평범하지만 본연의 삶을 완성한 한 인간에게 묵음으로 바치는 찬사. 한숨처럼. 수덕의 삶에 눈물이 고인다. 내 어머니의 삶이고, 다른 어머니들의 삶이다. 눈이 멀고, 몸이 오그라들어 못쓰게 될 때까지 바느질로 지킨 우물집의 삶. 인내와 절대고독과 거듭되는 인내. 고독... 한땀 한땀. 그 다음 땀만을 생각해야 연결되는 누비 바느질처럼 더 먼 곳을 보고는 지켜낼 수 없는 거친 나날들을 지켜낸 진중한 삶의 미학이다. 무명, 삼베, 명주, 양단... 그때의 하늘과, 그때의 먼지, 그때의 음식에도 옷감의..
미움받을 용기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의 비교에서 앞서 나가려는 것이다. 인생의 과제에서 나의 과제와 남의 과제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하는 것. 자신의 주관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것.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라. 평범해질 용기.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다. 길 위가 아닌 지금, 여기 충실히 춤을 추듯 살아라. 한 번쯤 들어봤을 내용들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완전히 소화, 흡수한 후 자신들의 말로 쉽게 표현했다는 방증이겠다. 남에게는 험담을 할 때조차 5분 이상 할애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 하고 싶은 대로 살..
한 여자 / 아니 에르노 처음부터 픽션이 아닌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글쓰기를 해왔다고 작가 소개에 적혀있다. 이 책은 어머니를 잃은 후의 딸 이야기를 적었다.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책 중반이 넘으면서 가슴은 먹먹해지고 피부는 차갑게 돌기했다. 치매는 아니셨지만 장기간 투병하신 엄마를 바라봤던 나의 경험이 빠르게 겹쳐졌다. 작가와 달리 나는 시간이 많이 흐르고서야 지친 나의 투정이 개입되지 않은 당당하고, 활기있고, 종교조차 자식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강한 모성의 정점인 엄마를 바로 보..
소설가의 일 / 김연수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성공을 간절히 원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지금 현재를 노력해서 살 뿐 미래는 나의 힘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결정되어진 길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뭐 이런 중언부언 평소 나누던 이야기들에 빠졌던 한가지가 위의 글귀를 만나는 순간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느냐, 배웠느냐,가 주는 생동감이 자칫 미래 예정설로 받아들여질 소지를 없애줄 때의 만족감이랄까. 나는 소설가가 될 일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
불륜 / 파울로 코엘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책. 온전히 공감하지도, 못할 것도 없는 그런 주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설명엔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게 한다면 몰라도. 다 읽고난 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가 생각나기도 하고. 외로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얼마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가. 존엄성을 잃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하다. 생물학적 욕구 충족에의 갈망은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서도 굴욕적인 경우는 더. 자연의 섭리. 순리의 삶. 내면의 풍랑은 외부의 힘으로 잠재울 수 없다. 삶의 열매는 다양하다. 주인공의 나이가 30대 초반인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시간의 물결을 잘 견디고 중심을 잡으면 저절로 알아지게 되는 것일지도. 자신을 학대한다는 느낌. 주변을 향한 거짓말들. 금지선을 넘은..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 다이 시지에 저자 소개 1954년에 중국의 푸잔에서 태어난 다이 시지에載思杰는 문화 대혁명 기간에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지목돼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고, 1976년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했으며, 1984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영화 학교를 졸업하였다. 2000년 프랑스 언론이 극찬한 첫 장편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뒤, 2003년에는 두 번째 장편소설 『D 콤플렉스 LE COMPLEXE DE DI』로 페미나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는 또한 영화 〈중국, 나의 고통〉(1989), 〈달의 수영선수〉(1994), 〈11세기의 당나라〉(1998) 등의 감독을 맡았으며, 〈발자크와 ..